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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소명(召命). 사전을 찾아보면 ‘개인적 삶의 목적을 실현하면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나온다. 소명을 직업의 영역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그저 직업인으로서 수행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일로 확장됐을 때, 우리는 이를 ‘직업적 소명’이라 부를 수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은 역사적 사명(使命)이나 대의(大義)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바르게 사는 것. 우리가 지켜야 할 ‘진짜’ 소명은 바로 거기에 있다.

글. 송석주(영화 저널리스트)

영웅도, 위인도 아닌 ‘직업인’

장준환 감독, 영화 <1987> 스틸컷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스물두 살의 대학생 박종철이 극심한 고문으로 인해 사망한다. 이에 대해 국가는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희대의 궤변을 내놓는다.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대공수사처 요원들은 증거 인멸을 위해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시신을 화장하려고 한다. 최소한의 요식 행위로 화장 동의서에 검사의 사인을 받으려고 하는데, 동의서를 읽어보던 검사가 대뜸 이렇게 말한다.

“이 양반아. 어떤 아버지가 서울대 다니는 아들 시신 확인도 안 하고 화장을 하라고 그러나? 구라를 쳐도 적당히 쳐야지. 이게 말이 돼 지금?”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2017)의 한 장면이다. 이후 검사는 윗선으로부터 온갖 압력을 당하지만 끝내 사인을 거부하고 시신의 부검을 명령한다. 영화에는 이와 비슷한 장면들이 많다. 박종철 사망 직후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던 의사의 양심 고백, 국가의 폭력적 위압에도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킨 부검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기자, 수감자의 면회를 방해하는 대공수사처 요원들에게 기본적인 교도소 수칙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교도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대학생. 이처럼 영화는 직업인들의 상식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극을 힘차게 밀고 나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이번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2017)를 살펴보자. 영화는 1971년에 발생했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펜타곤 페이퍼’는 1945년부터 1967년까지,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군사 개입 명분으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이 사실은 미국의 자작극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국방부 1급 기밀문서를 말한다. 당시 페이퍼 작성에 관여했던 한 연구원이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페이퍼의 복사본을 <뉴욕타임스>에 넘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펜타곤 페이퍼 보도 사건’의 발단이다.
‘펜타곤 페이퍼’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자 미국 정부는 <뉴욕타임스>를 국가 기밀 누설 혐의로 법원에 제소하고, 법원은 1심에서 보도 정지 판결을 내린다. 이로 인해 <뉴욕타임스>의 손발이 묶이게 되자 당시 중소 일간지에 불과했던 <워싱턴포스트>가 해당 문서를 입수해 후속 보도를 감행한다. <더 포스트>는 바로 그 지점을 묘파하고 있는데, 영화는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이었던 캐서린 그레이엄의 직업적 소명에 초점을 맞춘다.
캐서린은 영화 초반에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이자 발행인으로서 무능력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주주들로부터는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편집국의 기자들 역시 그녀를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회사의 운명이 달린 ‘펜타곤 페이퍼’의 보도 여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서 보도를 말리는 주주들의 요구를 단호히 물리치고 기자들의 손을 들어 준다. 신문사 발행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신문은 역사의 초고다. 우리가 항상 옳을 수는 없고, 완벽한 것도 아니지만 계속 써나가는 거다. 그게 우리 일이니까.”

두 영화는 기본적으로 역사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장엄한 역사가 전하는 구태의연한 교훈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두 영화가 전하는 진짜 이야기는 바로 그 역사의 지난함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생생한 발자국에 있다. 그 발자국에 맺힌 건 다름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이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직업인들의 그저 그런 하루하루가, 그들의 건전한 사고와 합리적 판단이, 세상을 구원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때론 역사 그 자체가 된다.

직업인의 태만은 곧 국가의 부재

이와는 반대의 이미지들도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국가와 국민이 얼마나 큰 불행에 빠질 수 있는지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뼈아프게 경험했다.
세월호 참사는 참혹한 인재(人災)였다.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참사 당시 해경의 상황 오판과 늑장 대처는 인명 피해를 더욱 키웠다. 그 와중에 언론은 설상가상으로 ‘승객 전원 구조’라는 전대미문의 오보를 냈으며, 국민의 생명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대통령은 사건이 발생한 지 7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는 직업인이 자기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역사에 얼마나 큰 상흔을 남길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김환태 감독의 영화 <세월 오적五賊>(2017)은 세월호 참사 전후의 과정에서 각자의 직업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던 정부, 국회, 언론 종사자들을 날카롭게 추적하며 직업인의 태만과 그로 인한 국가의 부재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미디어몽구, <팽목항 석양>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단원고 교사들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생명을 구원해야 할 필생의 사명을 떠안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직업으로 선택한 교사로서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한 것뿐이다. 그러한 그들의 직업적 소명이 학생들의 무참한 희생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막았다.

김탁환 지음, 북스피어 펴냄, <거짓말이다>

“저들에겐 제가 맹골수도에서 거금을 번 잠수사로만 보이는 겁니다. 게다가 그들이 저를 돈으로 보듯, 민간 잠수사도 실종자들을 돈으로 보고 간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겁니다.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땐 너무 화가 나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제 말을 믿어 주지 않는 겁니다. 서러웠습니다. 잠수사들이 맹골수도에서 어떻게 버텨 왔는지 대한민국 국민은 전혀 몰랐습니다.” - 소설 『거짓말이다』 中

이와 함께 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는 세월호 참사 당시 시신 수습에 참여했던 잠수사들의 암중모색과 진퇴양난의 순간들을 르포르타주(Reportage: 보고 기사 또는 기록 문학)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은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한 세월호의 어두운 선체 안에서 희생자들을 수면 위로 길어 올리던 잠수사들의 애환을 통해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것에 관한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당신의 노동이 세상을 구원한다

소명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썼지만 나는 이 글에서 ‘노동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 그저 직업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그 삶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고민하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혹시 지금 하는 일이 그저 밥벌이를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당신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노동은 누군가를 살리고 있다. 역사를 진보시키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각자의 위치에서 직업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바르게 살면 된다. 반복하건대, 우리가 지켜야 할 ‘진짜’ 소명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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